지혜 엄마에게 (양수지 권사님 글)
wuublpmy | Posted on |
8월 24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양수지 권사님 글 전문입니다.
지혜 엄마.
잘 지내죠? 파랑새처럼 활기찬 통통 튀는 목소리에 긍정 에너지를 듬뿍 품고, 거기에 편안함과 신뢰까지 주던 지혜 엄마,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새롭습니다. 한 여름 날에는 장대같이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겨울 날에는 펑펑 쏟아지는 하얀 눈길에 피어난 눈꼴들을 보며 같이 좋아라 했지요. 모네 미술전시회에서 모네의 작품들을 보며 우린 행운아라고 행운 노래를 합창했던 행운의 날에는 온 몸의 웃음이 다 빠져나가도록 웃고 또 웃었지요.
파킨슨 진단 받고 6년쯤 지났던가요? 우연히 마주친 어느 날, 많이 불편해 보인다며 걱정해주던 지혜 엄마에게 “피곤해서 그리 보이나봐” 하며 바뀐 주소도 전화번호도 주지 않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로 헤어진 지 10년이 넘었네요.
지혜엄마,
참 오랜만입니다. 이제서야 파킨슨 병과 함께한 아픈 사연을 알리네요. 처음 이 병이 시작되었을 때 몸의 반쪽이 피곤하고 어눌하면서 가끔 손가락이 떨리곤 했어요. 팔을 들어 올리려면 통증이 심해서 오십견인 줄 알고 한약방 출입도 하고, 다른 여러 병원들을 찾아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파킨슨 판정을 받았어요. 그날은 남편의 잿빛 얼굴을 마주하면 온 세상이 무너지듯 절망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하는 심정이었답니다. 시커먼 갯벌 속으로 빠져드는 묘한 아득함에 몸과 마음이 떨렸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리고는 점점 허리가 구부정해지면서 아프고 기운이 빠지더라고요. 화장실 이용, 목욕, 옷 갈아입기 등 일상생활이 느려지면서 어눌해지고 쉽게 피곤해지고요. 그래도 의사 선생님을 잘 만나서 나에게 맞는 약처방과 물리 치료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거기다 이 모든 증상들을 내 인생의 동반자라 인정한 후에는 많이 안정을 찾았답니다.
지혜엄마,
세상이 잠든 것 같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마음과 영과 혼을 그분앞에 열어놓으면 어김없이 손잡아주시고, 함께하며 인도해주시는 주님, 그분을 통해서만 숨 쉴 수 있었음을 고백하며 감사로 지낸 긴 시간이었습니다. 파킨슨과의 싸움과 미움도 이제 세월이 함께 누그러지면서 나만의 시간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감사했던 시간들 그리고 염려와 격려로 등두드려 주던 여러분들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날, 나의 길동무가 되어주었던 지혜 엄마는 신이 나에게 베푼 기쁨이며 위로였습니다. 오늘따라 지혜엄마의 넉넉한 마음과 따스한 우정이 이 글을 쓰게합니다. 이제 종종 소식 전할게요.